광주에 극한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17일, 급류에 휩쓸려 맨홀에 빠진 80대 노인을 맨몸으로 구조한 한 시민의 용기 있는 행동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광주 동구 소태동에서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는 최승일(54) 씨는 이날 오후 5시쯤 직원들과 함께 폭우로 넘쳐나는 빗물을 막기 위해 가게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거센 물살 한가운데, 눈에 띄는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물에 떠밀려오던 한 노인이 맨홀 구멍에 두 다리가 빠진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살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최 씨는 망설임 없이 물살을 가르며 뛰어들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노인은 이미 얼굴까지 물에 잠겨 호흡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노인의 양다리는 맨홀 가장자리의 아스팔트 구조물에 걸려 몸을 빼낼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더 거세졌습니다.
"숨을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최 씨는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고, 마침 눈에 들어온 넓은 나무판자를 이용해 물의 흐름을 막으며 노인의 얼굴 주변에 호흡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직원들에게 공업사에서 쓰는 도구를 가져오게 했고, 함께 힘을 모아 구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구조 도중 위험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대의 차량이 물에 떠밀려 최 씨와 직원들을 향해 다가왔고, 자칫 전원이 휩쓸릴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이 힘껏 차량을 막아 세웠고, 최 씨는 다시 구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공업사도 운영하고 있고 운동도 좋아해서 힘이 좋은 편인데도 당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며 "차량이 떠내려올 때는 '내가 이러다 같이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를 놓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쓰레기, 타이어 등이 밀려와 팔에 부딪히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구조에만 전념한 20여 분, 결국 노인을 맨홀에서 무사히 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노인은 의식과 호흡이 정상이었고, 최 씨와 직원들은 노인을 공업사 사무실로 옮겨 안정을 취하게 한 뒤 119 구급대에 인계했습니다.
다음날, 구조된 노인의 가족이 직접 공업사를 찾아와 최 씨와 직원들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최 씨는 "할아버지가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고, 가족들이 인사하러 오셨을 때는 괜히 쑥스럽더라"며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똑같이 물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모하게 나선 것 같았지만, 함께 뛰어들어준 직원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도심을 덮친 물벼락 속,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시민의 본능적 용기와 단단한 연대가 광주 시민들의 마음을 깊게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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