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일터①]"나가게 해주세요"...이주노동자의 묵살된 절규

작성 : 2025-08-06 15:11:56 수정 : 2025-08-06 15:27:14
<편집자 주> 
올해 2월 22일 새벽,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에서 26살 네팔 청년 뚤시가 숨졌습니다. 그는 구조적인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다 희생당했습니다. 뚤시의 죽음은 사업주의 횡포, 방치된 신고, 무력한 대응이 맞물린 구조적 비극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주 노동자 관리와 인권 보호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왜 뚤시와 동료들의 절규는 무시됐는지, 어떻게 하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는지 세 차례의 보도로 짚어봅니다.

▲ 괴롭힘으로 인해 이주노동자의 자살 사고가 발생한 영암의 한 돼지농장  

코끝을 찌르던 돼지 분뇨 냄새보다 더 지독했던 사장의 폭언과 손찌검. 네팔 청년 뚤시는 왜 끝내 농장을 떠나지 못했을까.

뚤시가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 와서 네팔에서 사업할게요.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

뚤시가 출국 전 네팔 포카라 공항에서 할머니에게 남긴 말입니다.

사업장에 간 첫날 뚤시를 맞은 사람은 영암 돼지농장 사장 홍 모 씨, 그리고 네팔인 선배 수잔 팀장이었습니다.

"열심히만 일하면 금세 돈을 모은다"는 달콤한 약속 뒤에는 극심한 노동 착취와 괴롭힘, 임금 체불이 숨어 있었습니다.

▲ 돼지 농장에서 뚤시와 함께 일했던 네팔 청년들 

외딴 농장에서 돼지 3,000여 마리를 네팔 청년 18명이 키워야 했습니다. 통상 5시간이 걸리는 분뇨 청소를 1시간에 모두 해 내야 할 정도로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초과나 야근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8시간만 일한 것처럼 출퇴근 기록을 조작해야만 했고, 한 달에 하루만 쉬었습니다. 일을 빨리하지 않으면, 계약서를 바꿔 임금을 깎았습니다.

뚤시가 일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신입이라는 이유로 칠판펜(보드마커)으로 찔리거나 손으로 맞는 폭력까지 가해졌습니다.

뚤시는 동료들에게 "내가 뭘 잘못해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통화·문자와 사진·영상도 감시당했습니다. 수잔 팀장이 멋대로 기록을 지우며 통제했습니다.

지난해 10월 19일엔 홍 사장과 수잔 팀장 지시에 불만을 보인 동료 프렘이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 KBC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는 영암 돼지농장 관계자들 


그날 밤, 뚤시는 동료 여섯 명과 휴대전화 불빛 아래 영상을 찍었습니다.

그는 네팔어로 떨리는 음성을 남겼습니다.

"이곳을 나가게 해 주세요." 그러나 업로드 버튼은 끝내 누를 수 없었습니다.

홍 사장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도 받지 않았습니다.

홍 사장은 다음 날 프렘에게 '스스로 넘어졌다'는 거짓 합의서를 쓰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프렘은 극심한 수치심에 손을 떨며 합의서를 써야 했습니다.

▲홍 사장의 만행에 대한 피해자들의 진술


뚤시는 올해 2월 10일 홍 사장의 만행을 또 봤습니다.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 걸 지인들에게 폭로하고, 친한 동료에게 퇴사를 권유했던 파온을 사장이 부른 겁니다.

홍 사장은 파온을 무릎 꿇리고 마구 때리며 싹싹 빌게 했습니다. 사장은 "네팔에 돌아가면 불법체류자 낙인이 찍힌다"고 협박 영상을 찍었습니다.

사흘 뒤 동료 13명이 작업을 거부했습니다. "왜 또 사람을 때리느냐"고 항의했습니다.

홍 사장은 "노동청에 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경찰이 너희들 편을 들어주겠냐"고 2시간 30분 동안 훈계했습니다. 끝내 동료 람과 리마가 해고됐습니다.

뚤시는 이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밥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작업 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뚤시에게 홍 사장은 으름장을 놨습니다. "일할래, 네팔로 갈래."

지친 뚤시는 사장의 강요로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습니다. 모든 직원이 모인 조회 시간에 뚤시에게 공개 사죄하라고 시킨 겁니다. 강요에 의한 영상 한 편이 더 찍혔습니다.

"아픈 척 연기하고 있다. 하루 쉬었으니 다시 일하라"는 폭언도 함께였습니다.

▲ 돼지 농장에 걸려있는 작업 장화 

뚤시는 다음 날 기숙사 통로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국 171일 만의 비극이었습니다. 회사는 진심 어린 사과를 외면했습니다.

뚤시가 떠난 뒤 동료 노동자들은 쉼터에서 사업장 변경을 기다리며 뚤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돌려봤습니다.

눈 덮인 목포 바다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엔 모두 밝게 웃고 있습니다.

▲뚤시(왼쪽에서 두번째)가 동료들과 함께 목포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사진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들의 목소리엔 슬픔이 가득합니다.

"뚤시가 떠나고 싶었던 곳은 한국이 아니라,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후속 기사 <[지옥의 일터②]"또 맞으면 오세요"...끝내 구조는 없었다>로 이어집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