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22일 새벽,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에서 26살 네팔 청년 뚤시가 숨졌습니다. 그는 구조적인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다 희생당했습니다. 뚤시의 죽음은 사업주의 횡포, 방치된 신고, 무력한 대응이 맞물린 구조적 비극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주 노동자 관리와 인권 보호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왜 뚤시와 동료들의 절규는 무시됐는지, 어떻게 하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는지 세 차례의 보도로 짚어봅니다.

코끝을 찌르던 돼지 분뇨 냄새보다 더 지독했던 사장의 폭언과 손찌검. 네팔 청년 뚤시는 왜 끝내 농장을 떠나지 못했을까.
뚤시가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 와서 네팔에서 사업할게요.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
뚤시가 출국 전 네팔 포카라 공항에서 할머니에게 남긴 말입니다.
사업장에 간 첫날 뚤시를 맞은 사람은 영암 돼지농장 사장 홍 모 씨, 그리고 네팔인 선배 수잔 팀장이었습니다.
"열심히만 일하면 금세 돈을 모은다"는 달콤한 약속 뒤에는 극심한 노동 착취와 괴롭힘, 임금 체불이 숨어 있었습니다.

외딴 농장에서 돼지 3,000여 마리를 네팔 청년 18명이 키워야 했습니다. 통상 5시간이 걸리는 분뇨 청소를 1시간에 모두 해 내야 할 정도로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초과나 야근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8시간만 일한 것처럼 출퇴근 기록을 조작해야만 했고, 한 달에 하루만 쉬었습니다. 일을 빨리하지 않으면, 계약서를 바꿔 임금을 깎았습니다.
뚤시가 일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신입이라는 이유로 칠판펜(보드마커)으로 찔리거나 손으로 맞는 폭력까지 가해졌습니다.
뚤시는 동료들에게 "내가 뭘 잘못해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통화·문자와 사진·영상도 감시당했습니다. 수잔 팀장이 멋대로 기록을 지우며 통제했습니다.
지난해 10월 19일엔 홍 사장과 수잔 팀장 지시에 불만을 보인 동료 프렘이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날 밤, 뚤시는 동료 여섯 명과 휴대전화 불빛 아래 영상을 찍었습니다.
그는 네팔어로 떨리는 음성을 남겼습니다.
"이곳을 나가게 해 주세요." 그러나 업로드 버튼은 끝내 누를 수 없었습니다.
홍 사장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도 받지 않았습니다.
홍 사장은 다음 날 프렘에게 '스스로 넘어졌다'는 거짓 합의서를 쓰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프렘은 극심한 수치심에 손을 떨며 합의서를 써야 했습니다.

뚤시는 올해 2월 10일 홍 사장의 만행을 또 봤습니다.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 걸 지인들에게 폭로하고, 친한 동료에게 퇴사를 권유했던 파온을 사장이 부른 겁니다.
홍 사장은 파온을 무릎 꿇리고 마구 때리며 싹싹 빌게 했습니다. 사장은 "네팔에 돌아가면 불법체류자 낙인이 찍힌다"고 협박 영상을 찍었습니다.
사흘 뒤 동료 13명이 작업을 거부했습니다. "왜 또 사람을 때리느냐"고 항의했습니다.
홍 사장은 "노동청에 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경찰이 너희들 편을 들어주겠냐"고 2시간 30분 동안 훈계했습니다. 끝내 동료 람과 리마가 해고됐습니다.
뚤시는 이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밥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작업 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뚤시에게 홍 사장은 으름장을 놨습니다. "일할래, 네팔로 갈래."
지친 뚤시는 사장의 강요로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습니다. 모든 직원이 모인 조회 시간에 뚤시에게 공개 사죄하라고 시킨 겁니다. 강요에 의한 영상 한 편이 더 찍혔습니다.
"아픈 척 연기하고 있다. 하루 쉬었으니 다시 일하라"는 폭언도 함께였습니다.

뚤시는 다음 날 기숙사 통로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국 171일 만의 비극이었습니다. 회사는 진심 어린 사과를 외면했습니다.
뚤시가 떠난 뒤 동료 노동자들은 쉼터에서 사업장 변경을 기다리며 뚤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돌려봤습니다.
눈 덮인 목포 바다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엔 모두 밝게 웃고 있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들의 목소리엔 슬픔이 가득합니다.
"뚤시가 떠나고 싶었던 곳은 한국이 아니라,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후속 기사 <[지옥의 일터②]"또 맞으면 오세요"...끝내 구조는 없었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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