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혈세 수백억 원을 투입한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도구 국산화 사업에서 기존 기업 도구를 새로 개발한 것처럼 속여 성과물로 포장한 것도 모자라 추가로 진행한 VR 도구 활용 사업마저도 외산 VR 도구를 쓴 게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참여 기업이 과제를 늘려달라며 신문지에 돈을 싸 바치는 뇌물 비리가 있었음에도 연구책임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고 이 기업이 추가 과제를 수주하게 두는 등 관리 부실도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24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감사위원회가 공개한 ETRI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사위는 2015년부터 8년간 총사업비 357억 원이 투입된 국산 VR 엔진 및 저작도구 개발사업에 대해 이런 부당 수행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련자를 징계할 것을 ETRI에 통보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 공동연구기관인 한 기업은 자체 개발 VR 엔진을 갖고 있었는데 VR 엔진 개발연구비를 지원받기로 하고 이 엔진 소스코드를 ETRI에 제공했습니다.
그러자 사업 책임자인 A 책임연구원은 2017년 이 소스코드를 기반으로 한 '다누리 VR'을 홈페이지에 개발 성과로 공개하고 연구개발 성과로도 제출했습니다.
홈페이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홍보까지도 진행했지만, 2021년에는 보안 취약점 등을 이유로 사이트를 폐쇄해 버리고 공개도 막았습니다.

이 VR 엔진을 기반으로 만든 콘텐츠라며 ETRI가 제출한 5개 콘텐츠 중에서 3개는 외산 엔진으로 구동되는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A 책임연구원은 소속 부서 연구연수생으로 특수관계에 있던 B가 2021년 25세 나이에 창업한 다른 기업의 법인 주소로 자택 주소를 제공하고 과제도 따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B가 연구 종사 경험이 2개월에 불과한데도 공동연구기관의 용역발주를 받게 하고, 이를 기반으로 VR 사업 관련 3건의 용역을 수주하게 한 것입니다.
A 책임연구원은 심지어 공동연구기관인 또 다른 기업 대표가 뇌물을 주려는 시도가 있었음에도 과제에 지속 참여시키기 위해 이를 신고하지 않고 내버려둬 이 기업이 사업비 11억 원을 타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A 책임연구원 주장에 따르면 이 기업 대표가 함께 식사한 후 신문지에 싼 현금 1천만 원을 차에 놓고 갔는데, 그는 이틀 뒤 계좌를 통해 돌려주기만 했을 뿐 부정행위를 즉시 신고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마저도 ETRI가 2023년 감사원에 수감 자료를 제출할 때 A 책임연구원은 현찰 3천만 원을 주며 과제와 연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거절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하는 등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감사위는 A 책임연구원을 중징계 조치하고 이번 연구부정행위에 대해 관련 법률 및 규정에 따라 검증 등 조치를 수행하라고 ETRI에 통보했습니다.

한편 감사위는 ETRI의 테라헤르츠 기반 대인 신발 보안검색 시스템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예산이 부당 집행됐다며 관련자 징계를 통보했습니다.
이 사업은 당초 212억 원을 투입해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해 신발을 벗지 않고도 원스톱 보안 검색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2021년 출범했으나, 2023년 1단계 평가에서 '극히 불량' 평가받아 지원 중단된 후 협약이 해지됐습니다.
협약해지로 실제 집행된 정부 지원 개발비는 134억 8,700만 원이었으며 사업 전담 기관은 ETRI에 제재부가금 1억 4,590만 원을 처분 통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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