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경쟁력 세계 3강을 노리는 우리나라가 AI 분야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이 최근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AI 영상 편집 플랫폼 카프윙이 지난해 10월 기준 국가별 인기 유튜브 채널 상위 100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AI 슬롭’ 채널 조회 수가 84억5천만 회를 기록하며 세계 1위였습니다.
2위 파키스탄(53억 회), 3위 미국(34억 회)과 큰 차이를 보이는 압도적 1등이었습니다.
소비량뿐 아니라 AI 슬롭 제작도 한국이 앞서나갔습니다.
전 세계에서 조회 수가 가장 많은 AI 제작 영상 채널 10개 중 4개가 한국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입니다.
AI 슬롭 소비·제작에서 세계 1위를 한 것이 기쁜 소식일 수 없는 이유는, 클릭 몇 번에 찍어져 나오는 AI 영상이 최소한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말초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현실에 없는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면서 힐링을 얻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최근 유행한 ‘밈’의 무한 확대 버전이거나 조회 수나 광고 수익을 노리고 최소한의 검수도 없이 대량으로 찍어낸 콘텐츠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AI 슬롭’이라는 이름 자체도 경멸하는 명칭입니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따르면 ‘슬롭(slop)’은 동물, 특히 돼지에게 주는 묽은 죽(꿀꿀이죽)이나 주방·화장실에서 나오는 폐수를 뜻합니다.
어원만 봐도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가치 없는 콘텐츠라는 함의가 담겼습니다.
AI 슬롭이라는 표현을 언제부터 대중적으로 썼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영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오픈소스 개발자 사이먼 윌리슨이 2024년 자신의 블로그에서 정의한 개념이 퍼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팸(spam)’이 원치 않는 이메일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 것처럼 ‘슬롭’은 원치 않는 AI 생성 콘텐츠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전에 수록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모든 홍보 콘텐츠가 스팸은 아니며 모든 AI 생성 콘텐츠가 슬롭은 아니지만, 무분별하게 생성돼 요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강요된다면 슬롭이 딱 맞는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AI 슬롭의 최다 소비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AI로 만든 영상·이미지에 표식(워터마크)을 붙이는 내용을 담은 AI 기본법이 시행됐습니다.
생성형 AI 모델·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AI 사업자와 제공받아 활용하는 AI 이용 사업자에게 부여되는 워터마크 규제가 다릅니다.
AI 이용 사업자는 워터마크를 마음대로 지울 수 있어, 소비자가 제대로 AI 영상을 구별하는 데 실효적인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있습니다.
또 AI를 쓰지 않는 영역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에서 AI를 살짝이라도 활용했다고 워터마크를 붙인다면 ‘B급 영상’으로 낙인찍히고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까 걱정하는 콘텐츠 업계 우려도 만만찮습니다.
제도를 완전무결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지만, 만들었다 치더라도 수용자가 지키지 않으면 디지털 세상에서 규제의 회피 경로는 무궁무진합니다.
AI가 주는 즉각적 도파민을 원하는 수요가 넘쳐난다면, ‘AI 슬롭 1위국’은 영영 우리 차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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