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민정수석 낙마..우병우와 조국, 대통령의 칼의 자격, 삼불후(三不朽) [유재광의여의대로108]

작성 : 2025-06-16 18:11:00 수정 : 2025-06-16 21:39:53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KBC 광주방송 서울광역방송센터가 위치한 '파크원'의 도로명 주소입니다. 정치권 돌아가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이에 대한 느낌과 단상을 진솔하고 가감 없이 전하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대사헌과 민정수석..곧은 칼날은 끝내 백 번 부러짐을 사양치 않는다
▲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김혜경 여사와 함께 공군 1호기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은 조선 세종 때 출사해 조정에 나가 45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육조의 판서와 경기관찰사, 대제학 등을 두루 지낸 서거정의 '신배대사헌(新拜大司憲)'이라는 칠언절구 시로 열어볼까 합니다.

서거정은 조선의 대법전인 경국대전과 삼국사절요, 동문선 등의 편찬을 주도하며 서문(序文)을 작성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훈구파'의 기틀을 놓은 거물입니다.

조선시대 인물비평서인 '국조인물고'는 서거정을 두고, "선비 중에 덕(德)과 공(功), 말(言), 즉 삼불후(三不朽)를 겸비한 자가 드물지만, 서거정은 말은 학문의 모범이 되고 공은 관직의 직무를 지켰으며 덕은 인망에 부응하니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서거정은 나이 마흔넷에 한 번, 쉰셋에 또 한 번. 두 차례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는데 '신배대사헌'은 그런 '삼불후' 서거정이 첫 번째 대사헌에 부임하면서 대사헌에 부임하는 감회와 자세를 밝힌 시입니다.

烏府淸班動百官(오부청반동백관) 사헌부 맑은 부서는 백관을 움직이는 자리인데
不才承乏愧朝端(부재승핍괴조단) 재주 없고 모자란 내가 대사헌 자리를 받았으니 부끄럽구나
何人自有風霜面(하인자유풍상면) 어떤 이는 서릿발 같은 위엄이 있었다는데
今我元非鐵石肝(금아원비철석간) 지금 나는 본디 철석같은 마음도 갖추지 못했구나
直劍不辭終百折(직검불사종백절) 곧은 칼날은 끝내 백 번 부러짐을 사양치 않는데
曲藤何用要千蟠(곡등하용요천반) 굽은 넝쿨은 천 번이나 휘감기니 어디에 쓰겠는가
幸逢昭代無封事(행봉소대무봉사) 다행히 밝은 시절 만나 소임 행사할 일 없으니
鳴鳳朝陽尙亦難(명봉조양상역난) 조정에 봉황 울음(탄핵 상소) 소리 나기 어렵겠구나

시정(時政)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밝히고, 문무백관(文武百官)의 비위와 불법을 규찰한다.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한다. 왕이 정한 인사나 법률이라도 법도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부한다.

사헌부(司憲府). 사(司) 자엔 '맡다' '지키다' '수호하다'는 뜻이 있고, 헌(憲)은 '법'을 뜻하니, 사헌부는 글자 그대로 '법을 수호하는 관청'이라는 뜻입니다.

고려와 조선,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법'을 수호하는 막중한 업무를 맡았던 조직이 바로 사헌부(司憲府)입니다. 그리고 그 사헌부의 수장이 '법을 수호하는 큰 사람', '대사헌'(大司憲)입니다.

사헌부는 고위 관리는 물론 임금의 친인척이라도 비리가 드러나면 판자에 그 죄목을 써서 가시더미와 함께 그 집 대문 앞에 걸었습니다.
◇사헌부, 추상 같은 엄정함..대소 신료는 물론 임금도 거침없이 탄핵
나아가 대소 신하가 아닌 임금 자신까지도 잘못이 있으면 거침없이 '탄핵(彈劾·잘못을 들어 꾸짖음)'했기에 그 엄정함이 서릿발 같다 해서 서리 상(霜) 자를 써서 '상대(霜臺)'라고도 합니다.

그 서릿발 같은 엄함이 한결같다 해서 가을 관청, '추관(秋官)'이라고도 불립니다.

서슬 퍼런 연산군 시절에도 사헌부는 "전하는 학문도 높이지 않고 정사에도 게으르고 간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직언을 거침없이 올립니다.

전국에 채홍사를 보내 기생들을 도성으로 들여 이들과 놀기 위해 백성들의 집을 허물고 백성들을 쫓아내고 흥청망청하자 도끼로 목이 잘릴 각오를 하고 "토지와 인민이 모두 임금의 소유냐"는 '지부상소'로 임금에 맞섭니다.
◇임금의 애첩, 왕의 형도 거침없이 탄핵..폭군, 성군 안 가리고 '바른 말'
연산군의 애첩 장녹수가 임금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휘두르며 사사로이 백성 집을 빼앗자 사헌부는 어김없이 "불가. 불가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화가 날 대로 난 연산군이 대사헌과 장령 등 사헌부 수뇌들을 모두 의금부에 하옥시켜 국문케 했지만 사헌부는 상소와 간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종 때엔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도성 출입을 금하라'는 태종의 유명을 어기고 도성에 출입해 관기와 사통하자 김종서는 사헌부 집의 신분으로 선왕의 장남인 양녕을 탄핵하라는 상소를 올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태종의 피비린내 나는 '형제의 난'을 지켜본 세종은 양녕과의 형제의 우애로 "다시 말하지 말라" 했지만, 김종서는 굴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자신의 뜻대로 처리해 주지 않으면 전하와 영원히 이별입니다"라며 왕의 형인 양녕을 국문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합니다.

사헌부는 이런 식으로 무려 15차례나 이 문제를 간쟁했고, 결국 대사헌 김맹성과 집의 김종서는 의금부에 투옥됐고 김종서는 장 80대를 맞는 수모까지 당합니다.

'성군'인 세종에도 '폭군'인 연산군에도 사헌부는 직언과 간쟁, 탄핵에 거침이 없었고, 조직의 수장인 대사헌일지라도 해야 할 탄핵을 안 하고 소임을 회피하거나 게을리 하면 사헌부 아래 관헌들이 나서 조직의 수장을 스스로 탄핵했습니다.
◇사헌부 관헌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
그 엄정함이 어찌나 추상같은지 정조 때 이긍익이 기술한 역사책인 '연려실기술'을 보면 "사헌부 관헌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려실기술은 또 "사헌부는 심히 맑아서 물욕이 없다"며 '사헌부의 칼'인 정6품 '감찰(監察)'에 대해 "남루한 옷에 좋지 않은 말과 찢어진 안장, 짧은 사모에 닳아 해어진 띠를 걸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엄정함과 청렴함. 이렇듯 사헌부와 사헌부 관헌들은 엄정함과 청렴함의 화신 그 자체로 평가받았고, 무엇보다 그 추상같은 엄정함을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했습니다.

가령, 친구나 친척이 상을 당해도 사람들이 있는 때를 피해 홀로 조문하고 홀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청탁을 받거나 말이 나올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려는 자세와 몸가짐입니다.
◇스스로에게 먼저 추상같이 엄정..사헌부 힘과 권위의 원천
스스로에게 먼저 엄정하고 추상같다. 어떤 흠 잡힐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사헌부 관헌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 하게 만든 힘과 권위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형조판서와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지사를 겸해 '문형(文衡)'을 관장했으며,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서거정조차 대사헌에 부임하면서 "재주 없고 모자란 내가 대사헌 자리를 받았으니 부끄럽다"고 자신을 낮추면서 "곧은 칼날은 끝내 백 번 부러짐을 사양치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서거정이 훈구파의 기틀을 놓았다면 사림(士林)의 정신적 뿌리가 된 정암 조광조는 나이 서른여섯에 대사헌이 됐는데, 1519년 10월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중종반정 공신들을 상대로 '연산군의 신임을 받았던 자들이 많다'며 공신들을 정면 탄핵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벌집이 쑤셔진 공신들은 사나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고 조광조가 너무 커지는 걸 저어한 중종의 변심으로 조광조는 유배를 가 사약을 받고 죽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화를 피하지 못하니 역사는 이를 기묘사화(己卯士禍)라 부릅니다.

愛君如愛父(애군여애부)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 했노라
憂國如憂家(우국여우가) 나라 근심하기를 내집 근심하듯 했노라
白日臨下土(백일임하토) 밝은 해가 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昭昭照丹衷(소소조단충) 환히 환히 내 붉은 마음 비추어 주리라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꿨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 하고 운도 맞추지 못 한 스무 자 절명시(絶命詩) 한 수를 남기고 30대에 요절한 조광조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백번 부러짐을 사양치 않은 곧은 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이, 조광조 죽음에 "이때부터 선비들의 기운이 몹시 상하고 나라의 맥이 끊어졌다"
그래서 율곡 이이는 조광조의 이른 죽음과 기묘사화를 두고 "이때부터 선비들의 기운이 몹시 상하고 나라의 맥이 끊어지게 되어 뜻있는 사람들의 한탄이 더욱 심해졌다"고 애석해 마지않았습니다.

조광조의 이른 죽음을 애석해 마지않은 이이는 '석담일기'에선 ""조광조가 대사헌이 되어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니 사람들이 모두 감복해서 그가 밖으로 나가면 시장 사람들이 말 앞에 모여들어 '우리 상전 오셨다'고 말하더라"라고 대사헌 조광조에 대한 세간의 평을 전하고 있습니다.

좀 길게 사헌부 대사헌 얘기를 했는데, 민정수석 얘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시정(時政)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밝히고, 문무백관(文武百官)의 비위와 불법을 규찰한다.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한다. 왕이 정한 인사나 법률이라도 법도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부한다.

대사헌과 민정수석. 휘하에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률비서관을 두고 여론 및 민심동향 파악,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과 공직·사회기강 업무, 법률문제 보좌, 대통령 친인척 관리 등 사헌부와 대사헌이 지금의 민정수석실과 민정수석 아닌가 합니다.
◇민정수석, 지금의 대사헌..대통령의 칼, '굽은 칼' 안 돼, '바른 칼'이어야
▲ 청와대 외경 [연합뉴스]

청와대 직속 감찰조직, 사정기관의 사정기관, 대통령의 칼.

그래서 사헌부 대사헌이 그랬듯 민정수석도 대소 신료는 물론 임금까지도 준엄하게 꾸짖고 탄핵해 바른길로 가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먼저 추상같은 엄정한 기준을 적용해 임금의 '곧은 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에, 스스로에게 먼저 추상같은 엄정함을 적용하겠다는 그런 자세와 각오로 받아야 하는 자리 아닌가 합니다.

부질없는 얘기지만, 박근혜 청와대의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신을 감찰하려던 김석수 특별감찰관에게 '형, 어디 아파' 하면서 감찰을 막지 않고, 아니 애초에 감찰 당할 일 없이 세월호 수사 방해 외압 같은 거 안 하고 공직 기강 대통령 측근 관리 민정수석 업무를 제대로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저렇게 탄핵을 당했을까요.

결은 다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면서 자녀 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발목이 잡혀 엄청난 고초를 겪으며 조국 장관 개인적으론 일가족이 '멸문' 수준의 화를 당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옷을 갈아입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5년 만에 정권을 내주는 일은 혹시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윤석열 대통령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검사 선배인 김주현 민정수석이 검찰의 명태균 수사와 김건희 씨 무혐의 처리 며칠 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심우정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통화 같은 거 하지 말고 원칙대로 엄정 수사 원칙을 천명하면서 세간의 민심을 윤 대통령에 가감 없이 전달했다면 윤 대통령 본인과 자신의 아내를 망친, 망치고 있는 황당한 비상계엄은 혹시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건 너무 허망한 얘기일까요.
◇"국정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이재명 대통령 첫 민정수석, 논란 끝 '낙마'
▲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접경지 주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오광수 변호사가 차명 부동산, 차명 대출 등 논란 끝에 이재명 정부 첫 민정수석에 임명된 지 닷새 만에 "국정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물러나는 걸 보며 든 생각들입니다.

시정(時政)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밝히고, 문무백관(文武百官)의 비위와 불법을 규찰한다.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한다. 왕이 정한 인사나 법률이라도 법도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부한다.

대사헌의, 민정수석의 일입니다.

"오광수 민정수석이 이재명 대통령께 사의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공직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의 중요성을 두루 감안해 오 수석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개혁 의지와 국정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발맞춰가는 인사로 조속한 시일 내에, 차기 민정수석을 임명할 예정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의 브리핑입니다. 민정수석의 중요성을 두루 감안해 민정수석 인사를 하겠다.
◇민정수석, 힘 있고 날카로운 칼일수록 곧아야..이재명 대통령 성공 바라
인사검증, 공직기강 확립, 사법개혁, 대통령의 국정 철학 이행.

이번엔 꼭 강유정 대변인 말대로 민정수석의 일을 맡고 수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세웠으면 합니다. 대통령의 칼입니다. 힘 있고 날카로운 칼일수록 곧아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은 기왕에 시로 시작했으니 시 구절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서거정의 외할아버지이자 세종 때 대사헌을 지낸 양촌 권근이 사헌부에 대한 긍지와 기개를 노래한 '상대별곡'(霜臺別曲)의 한 구절입니다. 서리 상(霜), '상대'(霜臺)는 사헌부의 별칭입니다.

화산(華山) 남쪽 한강 북쪽은 예부터 이름난 운치 좋은 땅
광통교(廣通橋) 운종가(雲從街) 건너 들어가면
죽죽 늘어진 늙은 소나무 우뚝 솟은 잣나무 추상오부(秋霜烏府, 사헌부) 있네
아, 만고의 청아한 바람 어떠한가
영웅호걸 당대의 인재 그 얼마이던가

'만고의 청아한 바람'이나 '당대의 영웅호걸'까진 아니어도, '대사헌다운', '민정수석다운' 민정수석이 선임되길,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길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합니다.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이었습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