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 시의 정수' 송수권 시인(1940~2016)이 타계한 지 어느덧 9주기.
광주에서 발행되는 계간문예지 《시와사람》 2025년 여름호가 송수권 시인의 시 세계를 재조명하는 첫 장을 열었습니다.
1975년 35세 때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 등 3편의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그는 한국적 전통에 뿌리를 둔 향토색 짙은 시를 발표해 일약 주목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는 1930년대 비롯된 모더니즘과 김수영의 현실참여, 그리고 민중시가 지배적인 경향을 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송수권은 우직하게 전통의 텃밭을 일구며, 깊게 스며든 정한(情恨)의 정서를 토속적인 언어로 빚어냈습니다.

그는 당시 당선 소감문에서 "말없이 불도저처럼 황토흙을 뭉개며 가보자. 가다 보면 뼈다귀라도 남겠지!"라며 확고한 시적 지향점을 표명하였습니다.
이후 송수권은 민족의 애환과 상처를 보듬으며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웅숭깊은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아울러 내용으로는 정한의 시를, 형식적으로는 가락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소월과 영랑, 서정주, 박재삼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송수권은 등단 40여 년 동안 시집 18권, 산문집 10권을 내며 말년까지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는 "송수권의 경우 40세 때 첫 시집을 내고 눈을 감는 날까지 펜을 들고 있던 대단히 희유한 경우를 보여준 시인이다"며 "10회에 걸쳐 송수권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이번 여름호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전남 곡성 출신 고(故) 차의섭 시인(1919~1995)의 행적을 더듬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차의섭은 농업은행에 근무하며 일제 정형시 배구(俳句)협회에 가입해 동인지 《등화》에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해방 후 광주·전남 관내 여러 군데 지역농협 중견 간부를 지냈는데, 1960년 농업은행 창립기념 현상공모시에 당선되고 1962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협동》지에 등단하였습니다.
정년 퇴임 후 1975년 충장로에 '동아다실'을 개업하며 문학에도 한층 활동폭을 넓혀갔습니다.
시조로 눈을 돌린 차의섭은 지역시조 동인지 《녹명》과 중앙문단의 《시조문학》에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그가 펴낸 시집은 1977년 《어느 정적》이 유일합니다.
이밖에 '이 시집을 주목한다' 코너에 김수열 『날혼』, 박정애 『물꽃』, 김나비 『타임 슐립』, 최양숙 『종소리에는 마디가 있다』를 소개하였습니다.
신인상 당선작에는 김진의 두두두 외 4편이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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