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_아빠의 남극일기(7)]우리가 지구 반대편 남극세종기지에 모인 이유

작성 : 2025-07-12 09:00:02
킹조지섬 세종기지서 38번째 겨울을 나는 월동연구대
각기 다른 분야·출신 18명 연구원들..동지 무사히 넘기고 '자축'
▲연구반 단체사진(왼쪽부터 고경준, 오영식, 안승민, 우재호, 김종훈, 고용수)

남극반도의 끝자락, 남위 60도 부근에 위치한 킹조지섬은 남극 지역 중에서도 '기후변화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곳이다.

남극대륙의 찬 공기가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계선에 위치해, 대기와 해양,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신호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우리나라는 이 킹조지섬에 세종기지를 세우고 38년째 월동연구대를 파견해 왔다.

대기, 생물, 해양, 지구물리 등 극지환경 전반에 걸친 연구를 수행하며, 남극 현장 자료 확보에 힘쓰고 있다.

비록 최신 장비를 갖춘 정밀한 실험은 국내 연구소에서 주로 진행되지만, 세종기지에 남은 연구원들은 현장에서 자료를 연중 수집하고 기초분석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월동대원 18명 중 연구원은 5명으로, 이들은 대기, 고층대기, 생물, 해양, 지질·지구물리 등 각기 다른 영역의 자료를 정기적으로 확보해 극지연구소 각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대기 대원(오영식)은 탄소, 메탄, 암모니아, 오존, 에어로졸 등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기체와 입자를 관측하는 장비를 유지·보수하며, 주기적으로 기지 주변 공기를 샘플링한다.

고층대기 대원(안승민)은 전파를 이용한 관측 장비를 통해 유성, 태양풍, 자기권 등 지상 60~1,000km 상공의 대기를 모니터링하고, 고층대기와 관련된 기후변화 자료를 수집한다.

생물 대원(우재호)은 펭귄 등 주변 생물의 자료를 수집하고, 지의류·토양 미생물 등 남극 생태계를 정기적으로 관찰하며 기록한다.

해양 대원(김종훈)은 매일 아침 부둣가에서 바닷물을 채수해 수온과 염분을 측정하고, 부두 주변 바다에서 미세조류, 플랑크톤, 엽새우 등을 채집해 분석한다.

지질·지구물리 대원(고용수)은 기지 주변에 설치된 지진계를 통해 지진, GPS, 조위, 전기비저항 탐사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또한, 이처럼 다양한 야외 활동이 필요한 남극 현장에서는 정확한 기상 정보가 필수다.

이를 위해 기상청에서는 경험 많은 기상예보관(고경준) 한 명을 파견해 기상 관측과 예보를 전담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의 남극 체류를 통해 연구를 수행하려면, 관측 장비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물과 전기, 난방, 식사 등 일상 인프라 전반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반이 바로 '상설 기지'다.

킹조지섬에는 총 9개의 기지가 설치돼 있다.

이 중 페루 기지(마추픽추)는 여름철(12월~2월)에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나머지 8곳은 연중 상주 인력이 머무는 상설기지로, 각 나라별 월동대를 통해 1년 내내 운영된다.

1년 동안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하며 생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먼저, 연구장비와 각종 전자기기를 운용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하다.

▲유지반 단체사진(왼쪽부터 노기영, 안진현, 서준영, 황대하, 양지훈, 민진홍, 이성수)

세종기지는 발전 대원(양지훈)과 전기 대원(안진현)이 상주하며 대형 발전기를 가동해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남극은 늘 추운 곳이라 냉장고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냉장고는 필수 장비다.

기온이 지나치게 낮으면 식재료가 얼어 손상되기 때문에, 일정한 온도로 보관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냉난방 설비와 보일러 등 기지 내 각종 기계설비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기계설비 대원(노기영, 이성수)도 상주하며 24시간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눈 또한 문제다.

남극의 눈은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쌓여 건물 높이까지 덮기도 한다.

이때 인력만으로는 제설작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1년치 식재료와 대형 연구장비는 매년 연말 단 한 번의 보급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 대량의 물자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중장비 운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중장비 대원(민진홍, 서준영)이 기지에 상주하며 장비 운영을 맡고 있다.

세종기지가 자리한 바톤반도(Barton Peninsula)는 활주로가 없어, 활주로가 있는 필데스반도(Fildes Peninsula)로 이동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이 구간은 고무보트 운항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해마다 해군 SSU나 UDT에서 현역 군인 1명(황대하, SSU)이 파견되어 보트 운항과 구조 등 안전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총무반 단체사진(왼쪽부터 장재원, 황의현, 김원준, 방성규, 이희영)

기지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도 필수다.

이를 위해 인터넷망과 컴퓨터 등 전자장비를 관리하는 전자통신 담당 대원(장재원)이 상주하고 있다.

또한, 월동대뿐 아니라 여름철(12월~2월)에는 현장 연구원 수십 명이 기지에 머물며 연구를 진행한다.

이들을 위한 응급처치를 포함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방성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루 세 끼를 책임지는 요리사는 기지 운영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인력이다.

1년치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매일 다양한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 대원(이희영)은, 대원들의 건강은 물론 사기 유지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지의 전반적인 일정과 행정, 자재 관리는 극지연구소에서 파견된 총무(황의현)가 맡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명의 모든 대원이 남극에서의 임무를 안전하게 완수할 수 있도록 월동대를 통솔하는 대장(김원준)이 극지연구소로부터 파견되어 기지 운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세종기지에는 각 분야별로 꼭 필요한 대원 1명씩, 총 18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월동대원들의 연령대는 1999년생부터 1969년생까지 다양하며, 출신 지역도 서울과 경기 같은 수도권부터 강원, 대구, 부산, 전남, 그리고 남쪽 끝 섬 제주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다.

전문 분야도 제각각인 이들이, 곳곳에 CCTV가 설치된 한 건물 안에서 하루 세 끼를 같이 먹고, 서로 맞닿은 방에서 잠을 자며 1년을 함께 보내는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아침잠이 많은 대원, 새벽까지 영화를 보다 복도를 걷는 대원, 단체 운동을 싫어하는 대원, 반대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행사를 기다리는 대원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365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곳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별다른 악의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선의로 한 행동이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말투 하나에도 민감해지는 공간. 그래서 '남극기지는 선발되는 것보다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10년 전(28차) 이곳 세종기지에서 월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도 앞뒤 다른 차대의 소문은 자연스럽게 퍼졌고, 어떤 사고가 있었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까지 금세 알려졌다.

이번에도 전차대(37차)는 물론, 전전전차대(35차) 이야기까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힘든 남극 생활 속에서, 월동대가 맞는 가장 큰 고비 중 하나로 늘 손꼽히는 날이 있다. 바로 6월 21일, 남극의 '동지(冬至)'다.

남극은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한국이 하지(夏至)를 맞는 이 시기가 이곳에선 동지다.

동지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게 떠 있는 날이다.

▲남극의 석양-겨울철 세종기지는 오후 3시면 해가 진다

올해 세종기지의 동지 일출은 오전 10시 24분, 일몰은 오후 3시 28분이었다.

고작 다섯 시간 남짓한 낮 시간 동안만 희미한 햇빛이 얼굴을 내밀었다.

동지가 지나면 태양의 고도가 점차 높아지고, 낮의 길이도 조금씩 길어진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이곳은 남극의 저기압대에 속해 있어, 매우 발달한 저기압이 주기적으로 지나간다.

한국이라면 아주 발달한 태풍이 바로 옆을 지나갈 때조차 관측하기 힘든 950hPa 정도의 기압도,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여러 번 경험한다.

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날씨는 흐리고 칙칙하다.

이런 날이 반복되면 대원들의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오는 맑은 날에는 가능한 한 야외 트레킹이나 햇볕을 쐴 수 있는 활동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맑은 날이 남극에서는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극에서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는, 단순한 절기를 넘어 가장 혹독한 시기를 버텨냈다는 상징이 된다.

세종기지를 비롯해 남극의 모든 기지들이 이날을 가장 크게 축하하며, 서로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도 그 이유다.

▲2025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동지 축전

올해로 서른여덟 번째 월동을 맞은 우리 세종기지도, 마침내 동지를 넘겼다.

그것도, 내가 아는 남극기지의 역사 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은 채, 모든 대원이 한마음으로 얼싸안고 그 기쁜 순간을 함께 나눴다.

전공도, 출신도,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이곳에 오기 전 대원들의 자기소개 시간에 유독 많이 들렸던 말이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었고,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모두 함께 웃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마음 하나로 고향에서 1만 7,240km 떨어진 이 얼음 땅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다.

-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 오영식(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연구반장)

글쓴이 : 오영식(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연구반장) / 오영식 작가의 여행 내용은 블로그와(blog.naver.com/james8250) 유튜브(오씨튜브OCtube https://www.youtube.com/@octube2022)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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