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직공장 소녀' 김형순 시인, 칠순에 첫 시집 출간

작성 : 2025-07-14 09:55:01
『엔도르핀 골목』, 갈피마다 굴곡진 삶
70편 수록, 들꽃처럼 진한 시의 향기
"이번 시집은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
▲ 김형순 시인과 시집 『엔도르핀 골목』

"시를 쓰면서 어려운 삶의 고비를 넘어온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은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죠."

'방직공장 소녀' 김형순 시인이 첫 시집 『엔도르핀 골목』(시와사람刊)을 펴냈습니다.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신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집 부근에 있는 방직공장에 다녀야 했습니다.

"그때는 살기가 참 힘들었어요. 동생들 중학교도 가야 하고 어머니의 고된 삶을 덜어 주려고 공장에 다녔어요. 친구들이 교복 입고 정규 중학교에 다닐 때 야학을 다니며 서러웠죠."

방직공장에서 하는 일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여러 대의 방적기 앞에서 실이 끊어지면 재빨리 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 출판기념회 웹자보

시인은 방직공장에 다녔던 사실이 부끄러워 비밀로 해왔으나, 시 '뽕뽕다리'가 2022년 제1회 박길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주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약 70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에는 시인이 부대끼며 살아온 굴곡진 세월이 흑백 판화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회한과 절절한 그리움, 수술실로 실려 가는 딸을 지켜보는 애타는 심정, 배움의 목마름, 부조리한 세상의 각박함까지 소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순간들이 갈피마다 뜨거운 숨결로 흐르고 있습니다.

발산마을과 임동을 잇는 길
철판에 구멍이 숭숭 뚫린 뽕뽕다리였지
조약돌 감는 실개천이 흐르는 그 위를 방직공장 오가는
아가씨들이 조심조심 건넜지

그 많던 방직공장 아가씨들은 모두 어디로 건너갔을까
실타래 감는 소리 지금도 들려오는데
끊어진 실을 교체하며 이어가는 빠른 손놀림처럼
끊어진 다리를 다시 이어볼 수 없을까
(뽕뽕다리 연가 中에서)

▲ 디카시 피고 진 꽃도 꽃이다

인고(忍苦)의 벽을 넘어 시인의 가슴에서 솟구쳐 나온 시편들은 또한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을 이겨내고 뿌린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청초하고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시인은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50년 만에 소녀 시절 추억이 어린 양동 발산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소방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들어서 많이 변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가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반면 뽕뽕다리를 건너 오가던 방직공장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대규모 공사장으로 변해버린 낯선 풍경에 헛헛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방직공장이 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헐리기 전에 공장 내부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는데,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습니다.

▲ 출판기념회 장면

시인은 12일 전북 순창 베르자르당에서 문우와 지인들을 초청해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인은 "시 안에서 나를 가꾸고 다스려왔다."며 "더 깊이 공부해서 감동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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